기억할것

4.3 사건

김영국 2010. 5. 27. 13:43

내가 이해한 바로는...

1. 1947.3.1 : 해방이후 제주에서 궁핍한 삶 등의 이유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의 발포가 일어남

2. 미군정은 경찰 보다 남로당의 선동에 무게를 두고 강력한 탄압을 행함

3. 1948.4.3 : 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

4. 경찰력으로 진압이 불가능해 지자 군병력 투입됨

5. 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안선과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마을 초토화.

" 심지어 진압 군경은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‘도피자 가족’으로 분류, 그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‘대살(代殺)’을 자행하였다."

6. 한국전쟁 발발이후 예비검속으로 잡아들인 3000명 이상이 즉결처분됨

7 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(禁足)지역이 전면 개방되었다. 이로써 1947년 3·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·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·3사건은 실로 7년 7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. 

8. 잠정적으로 4·3사건 인명피해를 25,000~30,000명으로 추정했다. 특히 10세 이하 어린이(5.8%·814명)와 61세 이상 노인(6.1%·860명)이 전체 희생자의 11.9%를 차지하고 있고, 여성의 희생(21.3%·2,985명)이 컸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.


4.3 위원회의 공식홈페이지에서 인용 및 정리

http://www.jeju43.go.kr/sub/catalog.php?CatNo=27&PHPSESSID=6b721972b3431e6abbeefd068225ccf2